우연이라는 단어는 계획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의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대도 없고, 그래서 더 쉽게 기분을 움직인다. 최근의 일상을 돌아보면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설명하기 어렵게 기분이 괜찮았던 날들이 있었다. 그 이유를 하나씩 되짚어보니 공통적으로 우연’라고 부를 수 있는 장면들이 그 사이에 섞여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맞춘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준비한 것도 아니었는데, 상황이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며 하루의 인상을 조금씩 바꿔놓았다. 이 글은 최근에 있었던 기분 좋은 우연들을 정리해보는 기록이다. 의미를 크게 부여하기보다는 어떤 순간들이 우연으로 인식되었고 왜 그것이 긍정적인 감정으로 남았는지를 차분히 되짚어본다.

1. 예상하지 않았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순간
최근 가장 인상 깊었던 우연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특별한 약속이 있던 날도 아니었고, 일부러 누군가를 떠올리며 외출한 것도 아니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동선으로 움직이던 중 정말 우연히 오랜만에 아는 사람을 마주쳤다. 반가움을 크게 표현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색함만 남는 관계도 아니었다. 그 애매한 거리감 덕분에 만남은 부담 없이 이어졌고, 잠깐의 대화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우연이 기분 좋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 만남이 어떤 목적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황을 자세히 공유하지 않아도 되었고, 다음 약속을 정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저 서로의 현재 위치를 확인하듯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이 과정에서 느껴진 감정은 반가움보다는 안정감에 가까웠다. 관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 관계를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점이 묘하게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 우연은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하루가 지나치게 고립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2. 필요하던 순간에 맞춰 나타난 사소한 기회
또 다른 기분 좋은 우연은 어떤 필요를 강하게 의식하지 않았을 때 발생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을 때보다, 그냥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순간에 상황이 맞아떨어졌을 때 우연은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최근에 그런 경험을 했다. 딱히 기대하지 않았던 정보나 기회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고, 그것이 지금의 상황과 생각보다 잘 맞아떨어졌다. 일부러 찾아본 것도 아니고 미리 준비한 것도 아니었지만, 타이밍이 이상할 정도로 정확했다. 이 우연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결과보다 과정에 있었다.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만족감보다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더 컸다. 내가 조정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맞춰진다는 감각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식이 기분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우연은 이처럼 노력의 결과를 대체하지는 않지만 노력하지 않은 영역에서도 삶이 완전히 비어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런 우연은 기쁨보다는 안도감에 가깝고 그 안도감이 하루의 감정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킨다.
3. 지나간 뒤에야 우연으로 인식된 일상의 장면들
가장 흥미로운 우연은 그 순간에는 우연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루를 보내는 동안에는 그냥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지나갔지만, 하루가 끝나고 나서야 그 장면들이 하나의 우연으로 묶였다. 평소보다 타이밍이 잘 맞았던 선택들, 괜히 미뤄뒀다가 오히려 더 나았던 결과들 별생각 없이 바꾼 일정이 예상보다 편안했던 경험들이 그것이다. 이런 장면들은 그 자체로는 인상 깊지 않지만, 하루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의미를 갖는다. 우연은 반드시 눈에 띄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의식되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더 크게 다가온다. 이 우연들이 기분 좋게 느껴진 이유는 하루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통제하지 않아도 하루는 무너지지 않고 때로는 예상보다 부드럽게 흘러간다. 이런 인식은 다음 날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준다. 모든 선택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고 조금은 여유 있게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연은 반복되면 특별함을 잃는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에 가깝다. 자주 발생하는 우연일수록 일상에 대한 신뢰를 만든다. 최근의 기분 좋은 우연들은 삶이 항상 예측 가능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조용히 알려주었다. 계획하지 않은 만남, 예상하지 않은 기회 그리고 뒤늦게 인식된 자연스러운 흐름은 모두 하루를 조금 덜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 글은 그 우연들을 붙잡아 의미를 확장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그냥 있었던 일을 정리해두는 기록이다. 우연은 붙잡을 수 없기 때문에 더 오래 남고 그래서 가끔 이렇게 적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