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 라는 단어는 보통 크고 분명한 소비를 떠올리게 한다. 값비싼 물건, 남들에게 보일 수 있는 선택 혹은 일상과는 분리된 특별한 경험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내가 체감하는 사치는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누군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되며, 오히려 혼자 있을 때 더 또렷하게 느껴지는 선택들이 나에게는 사치에 가깝다. 이 글에서는 내가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조용한 사치 들을 정리해본다. 이것은 소비 목록이라기보다 생활 방식에 대한 기록이며 무엇을 더 갖기보다는 어떤 순간을 허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1. 시간의 흐름을 서두르지 않는 선택
나에게 가장 대표적인 조용한 사치는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다. 정확히 말하면 꼭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 일부러 속도를 늦추는 선택이다. 예를 들어 약속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을 때 남는 시간을 활용해 무언가를 더 처리하기보다는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선택을 한다. 휴대폰을 꺼내 무언가를 확인하지 않고 주변을 살피거나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쓴다. 이 선택은 생산성의 관점에서는 불필요해 보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명확한 만족감을 준다. 모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아무런 결과를 만들지 않는 시간을 허용하는 것이 바로 내가 누리는 사치다. 이 시간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도 어렵고 기록으로 남기기도 애매하지만 하루 전체의 밀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시간을 쓰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는 행위는 생각보다 많은 여유를 요구한다. 그래서 이 선택은 무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식적인 결정에 가깝다.
2. 혼자만 아는 기준으로 선택하는 소비
또 다른 조용한 사치는 소비에서 드러난다. 다만 그 소비는 가격이나 브랜드로 설명되지 않는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오직 나만 알고 있고 타인의 시선과는 거의 무관하다. 예를 들어 매일 사용하는 물건 중에서도 손에 닿는 감각이 마음에 드는 것 반복적으로 사용해도 피로하지 않은 디자인 혹은 굳이 추천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개인적인 취향에 맞는 선택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소비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시가 되지 않고 그래서 더 오래 만족감을 유지한다. 조용한 사치의 특징은 반복 가능하다는 점이다. 한 번의 큰 소비가 아니라, 매일 비슷한 만족을 제공하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 소비를 통해 얻는 것은 새로움보다 안정감이며 특별함보다 익숙함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치는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생활 전반의 질을 천천히 끌어올린다. 나에게는 이처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소비가 가장 부담 없는 사치다.
3. 굳이 공유하지 않는 취향과 순간들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하는 조용한 사치는 공유하지 않는 태도에서 완성된다. 요즘은 어떤 경험이든 기록하고 남기고 공유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모든 순간을 그렇게 다룰 필요는 없다고 느낀다. 혼자만 알고 있어도 충분한 취향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만족,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이런 순간들은 외부의 반응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더 온전히 느껴진다. 누군가의 평가를 예상하지 않아도 되고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다. 이 선택은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경험을 소비하지 않고 유지하는 방식에 가깝다. 조용한 사치는 남기지 않음으로써 완성되기도 한다.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에 남고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왜곡되지 않는다. 이 사치는 타인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성립하며 오히려 그 점에서 더욱 개인적이다.
조용한 사치는 대단한 결심이나 큰 변화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할 수 있지만 굳이 하지 않았던 선택들 이미 알고 있지만 명확히 이름 붙이지 않았던 태도들에서 드러난다. 나에게 조용한 사치는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덜 설명하고 덜 증명하는 방식이다. 이 글은 그런 선택들을 정리해본 기록이며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고 싶은 생활의 방향에 대한 메모에 가깝다. 사치는 꼭 화려할 필요가 없고 조용할수록 오래 간다는 사실을 요즘 들어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