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의 기분을 색으로 표현해보기라는 주제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하루의 감정은 생각보다 많은 색을 품고 흘러간다. 말로 설명하면 복잡해지는 감정도 색으로 떠올리면 의외로 단순해지고 솔직해진다. 오늘의 나는 어떤 색으로 채워졌는지 그 흐름을 천천히 되짚어보고 싶었다.

1. 아침의 색은 연한 파랑
아침의 기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은 연한 파랑이다. 맑지만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색. 눈을 뜨자마자 쏟아지는 생각들이 있었지만 마음 깊은 곳은 비교적 고요했다. 해야 할 일들은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었고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이 있었다. 연한 파랑은 긴장보다는 숨을 고르게 해주는 색이라서 오늘의 시작과 잘 어울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도 부드러웠고 커피를 내리는 시간도 평소보다 천천히 흘러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건너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확신을 가졌다. 파랑은 희망이라기보다는 신뢰에 가까운 색이라서 나 자신을 믿어보자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도 줄어들었고 그저 내 리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이 파랑은 큰 기쁨은 아니지만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이었고 그래서 더 소중했다.
2. 오후의 색은 회색과 노랑 사이
시간이 지나 오후가 되자 색은 조금 복잡해졌다. 완전한 노랑처럼 밝지도 완전한 회색처럼 가라앉지도 않은 애매한 색이 마음을 채웠다. 해야 할 일들이 예상보다 늘어났고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에너지가 조금씩 빠져나갔다. 이때의 색은 흐린 노랑이었다. 무기력은 아니지만 가벼운 피로가 쌓인 상태. 집중하려고 하면 잡힐 듯 말 듯한 느낌이 계속 이어졌다. 그래도 완전히 회색으로 내려앉지 않았던 이유는 중간중간 작은 웃음과 성취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나 마칠 때마다 잠깐씩 밝아지는 노랑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 색은 오늘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었다. 동시에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지 말자는 신호이기도 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속도가 느려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색이 대신 전해주는 것 같았다. 회색과 노랑 사이에 머무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지만 그만큼 현실적이었고 지금의 나를 가장 닮은 색처럼 느껴졌다.
3. 밤의 색은 따뜻한 보라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의 색은 따뜻한 보라였다. 낮의 소음이 사라지고 혼자만의 시간이 시작되면서 감정은 한층 깊어졌다. 보라는 차분함과 감성이 함께 섞인 색이라서 오늘을 정리하기에 잘 어울렸다. 잘한 일과 아쉬운 일을 동시에 떠올리게 했고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주었다. 이 시간의 나는 누군가의 평가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따뜻한 보라는 위로에 가깝다. 오늘도 충분히 살았다는 말과 내일은 또 다른 색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조용히 건네준다. 하루 동안 여러 색을 오가며 살았지만 결국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는 안정감이 들었다. 이 보라가 있어서 하루의 끝이 외롭지 않았다.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고 명확한 결론이 없어도 괜찮다는 여유가 생겼다. 색으로 하루를 돌아보니 감정의 높낮이가 부드럽게 이어진 하나의 흐름처럼 느껴졌다. 오늘의 색들은 모두 나의 일부였고 그 어떤 색도 틀리지 않았다. 이렇게 하루를 색으로 표현해보는 기록은 내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해주고 내일을 조금 덜 두렵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색으로 하루를 남긴다.